3. 변함없는 퇴근길

단편 기묘한 이야기

변함없는 퇴근길

40대 후반. 이 회사에서만 20년째다.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다른 회사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도 이곳으로 따라왔지만, 이곳에서 작업 중 끔찍한 화상을 입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장애까지 얻게 되었다. 치료 비용 문제로 산재 처리 후 그게 문제가 된 것인지. 설상가상으로 돌아온 것은 냉혹한 권고사직 통보뿐이었다.

평소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채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잠들고 다시 일어나 출근하는 그런 나는 몸에 밴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오늘도 어김없이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아파트 단지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었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아파트 1층 현관에 들어설 때면, 잠시나마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가 있었다.

같은 층에 사는, 언제나 밝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던 이웃집 처자였다.

그녀의 맑은 미소를 보는 순간 만큼은 하루 종일 쌓인 피로와 서러움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언제나 처럼 엘리베이터 앞이나 안에서 마주치는데, 그녀가 언제부터인가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

“오늘도 늦으셨네요~”

내가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네도, 그녀는 멍한 눈으로 정면만 바라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환하게 웃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입을 꾹 다문 채 내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탈 뿐이었다. 복도식 아파트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늘 내가 앞장서서 걸어가고, 그 뒤를 그녀가 따라오는 식이었지만 며칠째 이어지는 그 서늘한 침묵이 묘하게 신경을 거슬렀다.

‘도대체 왜 저러지? 오늘 만큼은 꼭 이유를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며 퇴근하던 날이었다. 로비에 들어섰지만, 늘 서 있던 자리에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를 서운함과 실망감을 안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올라타려던 찰나였다.

삑삑삑삑 지잉—.

1층 현관문을 급하게 여는 버튼음 소리가 나더니, 그 처자가 숨을 몰아쉬며 뛰어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많이 늦으셨네요, 안녕하세요~”

하지만 그녀는 내 존재조차 모르는 것처럼 스쳐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마치 엘리베이터 안에는 자기 혼자만 탄 것처럼, 내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한 채 굳은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통화를 시작했다.

“엄마… 나 올라가는 중인데.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있어 주면 안 돼? 요즘 너무 무서워… 며칠 전부터 엘리베이터를 타면 누르지도 않았는데 우리 층이 벌써 눌려 있고, 오늘은 문까지 혼자 열려 있더라고… 이상해!!”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무슨 일로 저렇게 겁에 질려 있는 걸까 생각하던 사이, 엘리베이터가 우리가 사는 층에 도착했다.

띵— 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정말로 복도에 그녀의 어머니가 걱정스런 모습으로 나와 서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먼저 내려서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모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내 뒤를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걸어가며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모녀는 아무 말 없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복도 천장의 센서등이 이상하게 켜지고 있었다.
내가 걸어갈 때는 내 발걸음에 불이 켜지는 게 아니라, 내 뒤에서 바짝 따라오는 그 모녀가 걸어올 때만 불이 켜졌다. 내가 지나간 앞쪽 복도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오직 모녀가 들어서는 자리마다 불빛이 켜지고 꺼졌다.

내가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자, 모녀는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다.

딸이 먼저 불안한 듯 입을 열었다.
“엄마… 뭔가 음산하지 않아.. 나 진짜 소름 돋아. 요새 복도에서 왜 이렇게 썩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무슨 냄샌지 모르겠어.”

엄마가 딸의 어깨를 감싸며 대답했다.
“그러게… 생각해보니까, 너 퇴근할 때마다 같이 내리던 그 아저씨도 요즘 며칠 동안 안 보이지? 빨리 들어가자. 내일 관리사무소에 연락해봐야겠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얗게 굳어버렸다.

복도를 걸어가는 내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며, 몇 걸음 더 걸어가는 이 순간에도 내 머리 위 센서등은 켜지지 않았다.

뭐지 이 이상한 현상은…

홀린 듯 내 집 앞에 멈춰 서서,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두운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커튼 사이 보름달 빛이 비치는 침대 위에는, 화상으로 일그러진 채 편안하게 누워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흐트러진 약들과 함께.

그랬다.
산재 처리에 이어 권고사직 통보까지 받고 막막하던 나는 방 안에서 홀로 목숨을 끊은 지 며칠. 내 육신은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강한 바램이었는지 ‘퇴근길’이라는 뼈에 박힌 오랜 습관만이 영혼이 되어서라도 매일 밤 이 아파트로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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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더 이상 나를 반겨주지 않는 그 처자의 뒤를 따라 17층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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