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 기묘한 기야기
엄마의 바람
아들은 오랜만에 시골집을 찾았다.
해가 지기 직전이었다.
산 그림자가 마을을 삼키고 있었고, 집 뒤로 흐르는 강에서는 이상할 만큼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혼자 계셔 적적하실 엄마를 생각하며 대문을 열었지만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
“엄마…..”
대답이 없었다.
부엌에도, 안방에도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엌 아궁이에는 불씨가 남아 있었다. 내가 올 것을 아신 것 같이, 꼭 방금 전까지 저녁을 준비했던 것처럼 따뜻했다.
그때였다.
대문 밖 강 쪽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왔어?”
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강으로 내려갔다.
강둑에는 어머니가 서 있었다.
엄마의 모습은 여전하지만 생기가 없어 보였다.
“거기서 뭐 해?”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강물 속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천천히 무언가를 건져 올렸다.
젖은 천 이었다.
아들은 무심코 가까이 다가갔다.
천에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3-3 강효찬’
아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거 뭐야? 그걸 왜 건져”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네가 어릴 때 입던 체육복이잖아…”
아들은 말없이 그 옷을 바라봤다.
“너 기억 안 나?”
“뭘?”
“네가 여기서 죽은 날.”
순간 강바람이 멎었다.
아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엄마, 무슨 소리야. 뭘 죽어.”
어머니는 한참 동안 아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래.”
“그래서 이상한 거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자~”
엄마의 방에 들어가자 방에 물을 엎질렀는지 물이 고여 있었다.
“바닥에 이게 모야”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조용히 걸레질을 한다.
그날 밤, 아들은 아까 했던 엄마와의 대화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두 시쯤 이었을까..
방문 밖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뚝.
뚝.
뚝.
아들은 반복되는 그 소리에 눈을 떴다.
문틈 아래로 물이 조금씩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옆 방에서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절대로 문 열지 마.”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아들은 숨을 죽였다.
잠시 후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철벅.
철벅.
철벅.
이내 그 소리는 젖은 발로 마루를 걷고 있었다.
발소리는 방문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문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가 다시 속삭였다.
“네가 누구인지 묻거든…”
“…………………”
“대답하지 마.”
아들은 온몸이 굳었다.
문밖에서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엄마.”
“문 열어.”
“나야.”
아들은 입을 틀어 막았다.
그 순간, 방문 너머의 어머니가 울먹이는 듯 속삭이며 말했다.
“절대 대답하면 안 돼.”
그러자 밖의 목소리가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왜 그래 나 춥단 말이야.”
아들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어렴풋이 스치는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의 어느 여름 밤.
강가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아이가 물속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자신을 붙잡고 집으로 도망쳤다.
다음 날부터 어머니는 강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자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아들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마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젖은 발자국이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강으로.
아들은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 방의 문을 열었다.
방 안은 비어 있었고 침대 위에는 낡은 사진 한 장만 놓여 있었다.
사진을 보니 젊은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사진 아래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1998년 8월 18일.
아들은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는 엄마의 글씨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늘 강에서 죽은 아이를 묻었다.’
그 아래에는 한 줄이 더 있었다.
‘내 자식은 죽지 않았다.’
아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 상황에 놀라 사진 놓친다.
그 순간 강 쪽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 왔니.”
아들은 창가로 가본다.
안개 속 강가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그리고 좀 더 깊은 곳에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아들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지금 집에 아들이 와 있는데…”
어린아이가 웃으면서 집 쪽을 바라본다.
자기를 쳐다보는 것에 놀란 아들은 자신의 뒷걸음질 치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어린 아이다. 강가에서 어머니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지금 저 아이, 30년 전의 아이.
“엄마.”
“엄마.”
밖에선 아이가 엄마를 계속 부르고 있었고,
엄마는 아이에게 대답한다.
“너 기억 안 나?”
“뭘?”
“네가 여기서 죽은 날.”
.
.
.
“가자 방 따뜻하게 해 놨어..”
.
.
.
그들은 걸어오고 있었고 방 안은 고요했으며 강물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바닥엔 물이 고이고 있었다.
사라져 가는 나를 보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어디에서 온 건지,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엄마… 행복하세요….”



